본문 바로가기

우즈벡 비즈니스

안산시 원곡본동 사람들-우즈벡서 온 쉐르자드 `9형제 중 7형제가 한국 살아요`

2010/01/13 22:01


‘가야로 건너와 수로대왕과 혼인한 아유타국의 허황옥, 이성계의 오른팔로 위화도 회군에 참가한 이지란, 조선으로 귀화해 일본군과 싸운 왜장 사야가, 조선 최초 귀화 서양인 벨테브레(한국명 박연)…’



『우리 역사를 바꾼 귀화성씨』(박기현 저)에는 상고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귀화인들이 등장한다. 오래 전부터 우리들 사이에 외국인들이 섞여 살았다는 게 이 책의 결론이다. 신라나 고려시대의 문헌에는 터키·이란과 같은 중앙아시아에서 온 ‘색목인(色目人)이 거리를 활보했다’는 내용도 나온다. 오늘의 안산에는 중국·중앙아시아·동남아시아 등 세계 61개국 외국인 이주민이 저마다 자신들의 색을 드러낸 채 함께 살아가고 있다.


원곡본동 지키는 순찰대원 ‘나빅’


지난 7일 밤 10시. 경기도 안산시 단원구 원곡동에 위치한 안산외국인주민센터. 건물 외벽에서 번쩍거리는 네온사인이 눈에 들어왔다. 일명 ‘키다리 아저씨’로 불리는 조형물. 안산에 사는 61개 국가의 국기로 형상화했다. 주민행정 업무를 보는 동사무소처럼 모든 행정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차원에서 이름에 주민센터를 붙였다. 이곳서 일하는 사람들은 25개 동이 있는 안산의 26번째 동사무소라고 말한다. 


밤 11시. 원곡동 다문화길의 ‘만남의 광장’에 있는 원곡특별순찰대. 순찰대는 외국인 범죄 우려가 제기된 지난해 3월 출범했다. 9명의 대원이 3인 1조가 돼 매일 밤 10시부터 다음 날 새벽 4시까지 원곡동 유흥가 밀집지역과 주거지역을 순찰한다. 마침 최종반(52) 팀장과 팀원 2명이 패트롤카를 타고 순찰 나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대원 중에 동남아시아인이 눈에 금세 띄었다. 방글라데시인 나빅(39)이다. 그는 지난해 6월 중국인 방경호(32)씨와 함께 안산시청 계약직 공무원으로 특채됐다. 최종반 팀장과는 6개월째 한 조로 일하고 있다. 


“외국인을 상대로 기초 질서를 지키라고 계도하고 역주행과 무단횡단을 못하게 합니다. 한국문화를 잘 몰라서 쓰레기를 버리거나 외국인 간 폭행 사건이 발생하면 나가서 제지하죠. 여기에선 피를 보는 싸움이 종종 일어납니다. 그땐 경고음을 울리고 해산을 요구합니다. 말을 안 들으면 경찰에 통보하고 119 응급조치도 취하죠. 한국말을 잘 모르는 외국인과 순찰대원 간의 통역도 주요 업무입니다. 저는 한국어·영어는 기본으로 하고요. 인도와 네팔어도 할 줄 압니다.”


나빅은 입에 웃음기를 띤 채 자신이 하는 업무에 대해 설명했다.


그는 피투성이가 돼 몽골식당 앞에 쓰러져 있던 두 사람을 119에 신고해 구한 적도 있다고 했다. 나빅은 21살 때 한국에 사업하러 왔다가 한국 여성과 결혼하면서 정착했다. 올해로 한국 생활 18년5개월째다. 부천에서 살다가 다니던 공장이 이전하면서 95년 안산으로 왔다. 그는 “여기는 방글라데시인이 500여 명가량 사는데 직장 구하기도 쉽고 살기도 좋다”며 “한국 사람들이 아이를 낳지 않는데 나는 애를 많이 낳아 애국할 작정”이라고 말했다. 이날 1시간여에 걸친 1차 패트롤은 무단 횡단자와 역주행 차량에 경고 방송을 하는 것 외엔 별일 없이 끝났다. 4일의 100년 만의 폭설 탓인지 상점들은 평소보다 일찍 문을 닫았다. 


양고기 값 흥정하는 ‘레이’


새해 첫 일요일인 3일 다문화길에 위치한 우성축산 도매센터에 파란 눈의 이란인 레이(32)가 들어섰다. 그는 서투른 한국어로 양고기를 찾았다. 7년째 정육점을 운영하는 한국인 주인 정재훈(34)씨가 그를 맞았다. 

(레이) “양고기 한 근에 얼마예요?”

(정) “1만2000원입니다.”

(레이) “어, 지난주엔 9000원이었는데….”


난감한 표정을 짓던 레이는 정씨와 흥정 끝에 두 근을 샀다. 한 근에 1만1700원씩에 샀으니 도합 600원을 깎은 셈이다. 그는 “눈 오고 나서 며칠 사이에 고깃값이 많이 올랐다”고 투덜거렸다. 콩나물 값 100원이라도 깎는 한국 소비자의 모습과 다를 바 없었다. 한국에 온 지 9년 됐다는 그는 “안양에 사는데 매주 양고기를 사러 온다”고 했다. 직업은 액세서리 중개상. 한국·중국·태국산 액세서리를 구해 이란에 가져다 판다고 했다.


다국적 고객을 상대하는 정씨는 장사를 하다 보니 어느덧 10여 개 국가 언어를 구사하게 됐단다. 실력이 어느 정도냐고 묻자 “각 나라 인사말과 물건을 사고팔 때 나누는 기본적인 대화 수준”이라며 손을 내저었다. 정씨는 “경기가 안 좋은 데다 요즘 불법체류자 단속이 강화돼 손님이 줄었다”고 했다. 그는 “하지만 주말이면 각양각색의 인종들로 붐빈다”고 말했다. 특히 여름철에는 각 나라별 밴드와 전통축제 공연이 줄을 이어 경연장을 방불케 한다고 소개했다. 


한국어 학습서 낸 '당기'


우즈베키스탄 쉐르자드(37)는 2005년부터 이곳에서 양고기를 전문으로 하는 우즈벡 전통 음식점을 운영한다. 아내와 자녀 넷이 함께 살고 있다. 그는 “9형제 가운데 7형제가 한국에 들어와 서울·부산·대구·인천 등지에서 우즈벡 음식점을 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하지만 9형제들에 대한 인터뷰 요청은 거절했다. “신문에 나면 이곳을 장악하고 있는 특정 국가 폭력배가 가게로 찾아와 돈을 요구할 것이 걱정된다”는 이유였다. 


네팔식 카트만두 레스토랑을 지난해 6월에 연 마노르 쿠마르 당기(33)는 네팔의 대학에서 한국어학과를 졸업했다. 한국으로 가는 네팔인 파견 근로자를 대상으로 한국어를 가르치다 아예 ‘처음 배우는 한국어 읽기’라는 자습서를 스스로 제작했다. 

“네팔에선 출판사 직원들이 컴퓨터로 한국어를 치지 못한다. 내가 직접 손으로 쳤다. 전기가 하루에 6시간만 들어와 작업이 늦어졌다. 꼬박 1년 걸렸다.”


당기는 책 한 권당 1만원씩 받고 네팔인 근로자들에게 팔았다. 5000권을 찍어 100권만 남고 다 팔았단다. 그는 히말라야로 가는 한국 관광객들을 위해 현지 여행사를 연결해 주기도 한다. 물론 무료 봉사다. 당기는 “내가 한국에 처음 와서 관공서·세무서·관광협회 등을 찾아다니며 외국인 등록을 하고 음식점을 낼 때 한국 사람들이 친절하게 알려줬다”며 “그에 대한 보답 차원”이라고 말했다. 


한국에 온 이유가 뭘까. 그는 “중학교 3학년인 장남이 장차 한국의 대학에서 IT를 전공하고 싶어한다”며 “미리 SKY(서울·고려·연세대) 대학 정보도 알아보고 학비도 벌기 위해서”라고 했다. 본인보다 자녀들이 한국을 더 많이 알고 좋아한다고 설명했다. 한국인에 대한 인상을 물었다. 그는 “한국 사람요? 처음엔 무서워 보이는데 알고 보면 따뜻하고 친절하던데요”라며 밝게 웃었다. 


안산외국인주민센터 김창모 소장은 “앞으로 안산이 삼국시대의 향·소·부곡이 아니라 다문화 공생의 모델이 되게끔 이주민 정책을 선도해 갈 것”이라고 밝혔다.



출처: http://www.koreadaily.com/news/read.asp?art_id=9718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