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의 ‘다찌집’
어느 누리꾼이 통영에 있는 ‘다찌집’에 대해 소개해놓은 글이다. 다찌를 친구를 뜻하는 일본말 도모다찌에서 나온 것으로 보고 있는데 이는 잘못된 정보이다. 통영에 살면서도 다찌의 유래를 잘 모르고 있다니 안타깝다.
어느 해 여름의 일이다. 경남 일대 문화 유적지 답사를 위해 통영에 간 김에 다찌집에 들렀다. 땡볕 아래 온종일 걸어 녹초가 된 회원들을 끌고 통영시를 찾았을 땐 어스름 저녁 해가 넘어가고 있었다. 회원 중에 마침 통영에 친구를 둔 사람이 있어 그가 친구를 전화로 불러냈다. 전화를 받은 친구가 득달같이 나와 우리를 안내한 곳이 바로 다찌집이었다. 그 다찌집은 차도 들어갈 수 없는 비좁은 주택가 골목을 끼고 들어가야 찾을 수 있었는데 비밀 통로처럼 막다른 곳에 있었다. 3층짜리 건물은 2층이 당구장이고 1층이 식당이었는데 시멘트 계단은 청소를 언제 했는지 모를 정도로 깔끔하지 못해 음식이 썩 맛있을 것 같지 않아 보였다. ‘이런 곳이 식당이라니······’ 생각하면서 따라 들어갔다.
그러나 식당 안으로 들어가자 바깥 분위기와는 사뭇 다르게 고급 일식집을 연상시키는 실내장식이 되어 있어 내심 놀랐다. 넓은 홀을 없애고 그 대신 서너 명 또는 대여섯 명씩 들어가기 좋은 방으로 꾸민 내부 구조가 독특했다. 무슨 비밀 아지트 같았다. 그중에서 우리는 원두막처럼 생긴 방 안으로 들어갔는데 화장을 곱게 한 주인 여자가 그 회원 친구를 잘 알고 있는 양 우리를 반갑게 맞이해주었다. 주인 여자는 “통영 처음이지예. 이곳은 다찌가 유명하지예. 기다리이소, 한 상 차려 올 테니······”라고 말한 뒤 시원한 물수건을 두고 나갔다.
자리에 앉자마자 통영의 다찌집을 화제로 꺼낸 사람은 우리를 안내한 회원 친구였다. 우리 중에는 평소 다찌집이란 말은 들어봤지만 실제로 와본 것은 처음이라는 사람도 있었고 다찌집이란 말을 처음 듣는다는 사람도 있었다. 음식이 나오기 전 우리는 이 정체 모를 ‘다찌’라는 말의 출처에 대해 갑론을박했다. 물론 우리를 안내한 그분도 시원한 답을 하지 못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다찌란 무엇이며 대관절 어느 나라 말인가?
위 예문에서 누리꾼은 다찌가 친구를 뜻하는 일본말인 도모다찌에서 온 듯하다고 했다. 또 다른 누리집에서는 이 말의 뜻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나 싶어 뒤져보니 한 누리꾼은 자신이 궁금해 통영시청에 문의한 결과를 공개한다면서 도움이 되면 좋겠다는 말과 함께 통영시청의 ‘유권해석’을 소개해놓았다.
다찌집이란 일본말 ‘다찌노미(立飮み, 서서 마시기)’에서 유래한 것으로 되어 있었다. 《다이지센》을 통해 다찌의 내막을 좀 더 살펴보도록 하자.
▶ たちのみ【立飲み】 立ったままで飲むこと. 「酒屋で~する」
번역하면 ‘선 채로 마시는 일.(술집에서 선 채로 술을 마시다)’로, 간이역의 우동집도 아니고 선 채로 술을 마시다니 무슨 말인가 의아할 것이다. 비록 허름한 주막일지라도 평상에 턱하니 엉덩이를 걸치고 앉아 술상을 받는 게 우리의 술 문화인지라 이해가 좀 안 갈지도 모르겠다.
서서 후딱 술 한잔 마시는 다찌노미 말고도 일본에는 다찌구이(立食い)라고 해서 역전 같은 곳에 우동이나 소바 등을 빠르게 먹을 수 있는 식당이 많다. 다찌노미나 다찌구이나 모두 ‘서다’라는 뜻의 일본말 다찌(立ち)가 붙는다. 이 말이 붙으면 ‘임시로, 얼른, 후다닥’의 이미지가 강해진다. 일본이나 한국이나 제대로 된 술상을 받으려면 서서 받을 수는 없다. 오랜 전쟁으로 긴장을 늦출 수 없거나 경제건설의 일꾼으로 새벽 별 보기 운동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앉아서’ 먹는 게 정상이다. ‘다찌(서서)’ 받아먹는 술 한잔에 안주가 제대로 나올 리 없다. 시어 빠진 김치 한 쪽이거나 전날 주모의 애인이 잡아온 비릿한 생선 반 토막을 구워 내거나 하는 수준이리라.
이처럼 통영의 다찌집은 일본말 다찌노미에서 ‘다찌’만을 취해 만들어진 말로 보인다. 말은 다찌를 취했지만 내용은 넘치는 한국식 인정이 가미된 술집이 아닐까? 막걸리 한잔으로 목을 축이던 술집에서 다양한 안주를 주는 술집으로 바뀌었음에도 술집 이름은 예전 그대로 부르는 것일지도 모른다.
일본 동경올림픽이 열렸던 요요기 청소년국제센터 뒷문을 빠져나가면 그저 수수한 밥집처럼 생긴 식당이 하나 있다. 이곳은 밥도 팔고 술도 파는데 재미난 게 차림표가 특별히 없다. 맥주든 일본술이든 시키면 안주는 그날그날 주방장의 형편에 맞게 나온다. 생선구이가 나올 때도 있고 무조림이 나올 때도 있다. 통영의 다찌집에서 우리는 통영만의 다찌 술상을 군침을 흘리며 기다렸다.
드디어 안주가 들어오기 시작하는데 와, 이건 무슨 잔칫집 분위기다. 해산물 위주로 해삼, 멍게 등의 기본 안주부터 여러 가지 싱싱한 회에 게찜 같은 값비싼 요리에 이르기까지 그 종류와 양이 엄청났다. 도대체 이렇게 갖다 주면 술값은 얼마나 할까 싶었는데 차려 내온 음식에 비해 술값은 그다지 비싸지 않았던 기억이다. 상다리가 부러져라 차려 왔다 해도 과장은 아니다. 그날 우리가 특별한 손님이라 그랬는지는 몰라도 통영의 다찌집은 서서 대충 안주 하나로 입가심을 하는 그런 집이 아니었다.
한 상 푸짐하게 차려 내오는 음식점 이름이 어찌해서 서서 대충 먹는다는 뜻의 다찌로 굳어진 것인지 통영을 떠나면서도 궁금증이 풀리지 않았다. 이제 통영의 다찌는 그 어느 지방에도 없는 독특한 술집으로 자리 잡은 모양인데 그래도 그 이름이 ‘다찌노미’에서 유래되었다는 것이 어째 좀 씁쓸하다.
[네이버 지식백과] 통영의 ‘다찌집’ (사쿠라 훈민정음, 2010. 11. 15., 인물과사상사)
출처 :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1928659&cid=41818&categoryId=418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