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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즈벡관련 영상

하킴과 바르친

하킴과 바르친이라는 우즈벡을 배경으로 한 단편영화입니다.

고양이를 부탁해로 잘알려진 정재은감독이 문체부의 지원하에 아시아문화네트워크를 통해 제작했습니다.

내용은 우즈베키스탄의 영웅서사시인 알파미쉬의 내용에서 모티브를 가지고 온 내용입니다.

이 단편영화는 내용도 내용이지만 부하라와 함께 도시전체가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히바의 모습을 볼 수있다는 사실에서 놀라움을 주게합니다. 

부하라도 좋지만 히바 역시나 그에 못지 않은 아름다움과 이야기를 가지고 있는 도시입니다.


하킴과 바르친


인터넷에서 확인가능한 줄거리는 이렇습니다.


'사랑하는 하킴을 남겨두고 고향을 떠나는 소녀 바르친'이라는 부제의 이 영화는 우즈베키스탄의 대표적인 영웅서사시 "알파미시"를 토대로 기획되었다. 우즈베키스탄의 전통무용을 배우는 예쁘고 사랑스러운 소녀 바르친과 그녀의 사촌이자 사랑하는 여인인 하킴에 대한 이야기다.

아버지를 따라 고향인 히바를 떠나야 하는 바르친은 하킴에 이끌려 둘의 추억과 삶이 베어있는 히바 곳곳을 배회하는데.......'


주연은 우스마노프 코디르 포찌로위츠Usmanov Qodir Fozilovic , 살리예바 세바라 안와르베코브나Sailryeva Sevara Anvarbekovna입니다.

하킴과 바르친은 알파미쉬의 주인공 이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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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르키즈스탄에 마나쉬가 있다면

우즈베키스탄에는 유사한 서사시인 알파미쉬가 있습니다.

인터넷에서 확인가능한 알파미쉬의 내용을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1940년대 이후 알타이인의 대표적인 서사시인 마나스를 비롯하여 다수의 구비문학 이야기들이 본격적으로 채록되었고 비교적 체계적으로 연구되었다. 바이칼 지역의 게세르의 경우 샤머니즘의 원칙이 가장 분명하게 드러나 있고, 키르기즈의 마나스에서는 세속화된 샤먼세계와 이슬람적 영향의 침투를 확인할 수 있다.


서사시는 크게

  1. 영웅의 탄생과 어린 시절
  2. 약혼자를 찾아가는 영웅의 결혼 여행 모험담으로 구성된 전반부와
  3. 주인공 영웅 알파미쉬가 포로로 겪게되는 고초
  4. 고향으로 돌아와서 자신의 경쟁자이며 스스로 알파미쉬의 권위를 참칭하는 적을 물리치고 권위를 회복하며 약혼녀 바르친과 결혼하게 되는 후반부로 나뉜다.

파질의 판본은 전반부를 다섯 개의 노래로 그리고 후반부를 다섯 개의 노래로 나눠서 영웅의 행동이 전개되는 스토리라인에 개별 에피소드를 삽입하는 형태를 취하고 있다. 국내에 원본이 소개되어 있지 않아 서사시의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먼 옛날 바이순 지역의 쿤그라트(혹은 콘그라트) 종족 가운데 다반비이가 살고 있었다. 다반비이에게는 알핀비이라는 아들이 있었다. 알핀비이에게는 바이부리와 바이사르라는 두 아들이 있었다. 큰아들인 바이부리는 쿤그라트의 족장이었고 바이사르는 바이순 족의 유르트 일만 채를 대표하는 비이였다. 형제는 현명하고 부자였으나 나이가 들도록 자손이 없었다. 한번은 큰 잔치 모임에서 자손이 없다는 이유로 놀림감이 되는 모욕을 당한 후 자손을 낳게 해 달라고 신에게 기도하며 매달렸다. 기도가 통해서 신의 대리인이 순례자의 형상으로 꿈에 나타나서 바이부리에게는 아들과 딸이 그리고 바이사르에게는 딸이 생길 것이며 아이들이 출생하면 종족의 대부분을 초대하는 성대한 잔치를 열라고 그들에게 말해주었다. 그리고 그 잔치에 신의 대리인도 꿈에서와 같은 순례자의 형상으로 나타나서 아이들의 이름을 직접 지어주겠다고 약속했다.

바이부리의 아들은 하킴이라는 이름을 딸은 칼드르가치라는 이름을 받았고 바이사르의 딸은 바르친을 이름으로 받았다.

신의 대리인은 하킴의 미래가 영광스러울 것이라고 예언하고 하킴과 바르친을 약혼시키도록 명했다.(바르친은 우즈벡어로 요람에서부터 약혼한 사이라고 하는 베쉭 키리트마의 의미를 갖고 있다.) 신의 대리인이 하킴의 어깨를 손바닥으로 내리치자 어깨에 불로 새긴 듯하게 손바닥 문신이 그려졌다. 이 징표를 가진 이는 불에서도 타지 않고 그 어떤 칼도 그를 해할 수 없으며 화살(혹은 총알)도 그를 위협할 수 없다고 예언하였다.

아이들이 세 살이 되자 부모들은 자식들을 학교에 보내 쓰기와 읽기를 가르쳤다. 일곱 살이 되어 아이들이 문자를 터득하자 부모들은 다시 그들을 집으로 데려왔다. 하킴은 농업과 군사기술을 배웠고 바르친은 목축을 배웠다.

일곱 살이 되자 하킴은 생애 첫 번째 영웅스러운 행동을 했다. 아직 어린아이인 하킴이 할아버지가 쓰던 청동으로 만든 무거운 활의 시위를 당기니 화살은 번개같이 날아서 아스카르산의 정상에 명중했다. 이 일이 있은 후 하킴은 알파미쉬라는 이름을 얻었다.(알프 혹은 알파는 용사, 무사를 지칭하는 튜르크어이다.)

우애가 깊던 바이부리와 바이사르 두 형제간에 불화가 생겨났다. 형이 이슬람의 율법에 따라 자선을 행하기 위한 목적으로 동생에게 딸을 시집 보내면서 막대한 지참금을 가져올 것을 요구하자 동생은 튜르크인 쿤그라트의 전통에는 그와 같은 사례가 없음을 지적하고 형이 보낸 심부름꾼들에게 매질을 가해서 그들을 불구로 만들어버렸다. 그 사건이후 동생은 자신이 이끌던 일만 채의 유르트와 가축들과 함께 칼믜크인들의 나라로 유목지를 옮긴다. 바이순을 떠나 알라타우 산맥을 넘어 육개월 정도 여행을 한 동생은 마침내 카샬이라고 불리는 이민족의 땅에 도착해서 칼믜크인의 왕인 타이차한에게 복속하였다. 칼믜크인의 나라에서 쿤그라트인들은 아이나-콜(거울이라는 뜻의 튜르크어) 호수 인근의 칠비르-촐 스텝에 정착하였다. 쿤그라트인은 고향에서 하던 대로 농사를 짓고 가축을 길렀다.

칼믜크인들의 왕은 아흔 명의 무사들과 함께 동굴에서 살고 있었다. 무사들은 몸무게 보다 무거운 큰칼을 차고 있었고 혼자서 매일 양 아흔 마리를 먹고 마흔 명의 처녀를 몸종으로 부렸다. 그 가운데 가장 힘이 센 자들은 수르하일이라는 이름을 가진 교활한 노파의 일곱 명의 아들이었다. 일곱 가운데 장자는 코칼다쉬, 차남은 쿠카몬, 막내는 카라잔이었다. 이들은 모두 다 바이사르의 딸인 바르친의 미모에 반했다.

수르하일은 막내 아들인 카라잔을 데리고 청혼을 하러 바이사르를 찾았지만 거절당했다. 카라잔은 바르친에게 다가가지 못한 채 유르트 주위에서 어슬렁거렸고 쿠카몬은 완력으로 바르친을 가로채려하였다. 하지만 영웅의 기질을 타고 난 바르친은 그를 잡아서 땅에 내동댕이쳤다. 마침내 장남인 코칼다쉬가 무사들을 이끌고 바이사르에게 가서 바르친의 남편 감으로 무사들 가운데 한 명을 고르든지 바르친을 모든 무사들의 공유 부인으로 내 주든지 선택을 강요했다. 바르친과 바이사르가 코칼다쉬의 제안을 무시하지만 칼믜크인들은 무력으로 바르친을 납치하려하였다. 바르친은 기지를 발휘해서 육개월간 선택할 시간을 달라고 한 뒤 쿤그라트에 있는 약혼자에게 사람을 보냈다.

이 소식을 들은 알파미쉬는 여동생인 칼드르가치의 충고를 받아들여서 아버지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바르친을 구하러 칼믜크인의 땅으로 길을 떠났다. 칼믜크 땅에서 알파미쉬가 처음 만난 무사는 카라잔이었다. 카라잔은 이미 꿈속에서 알파미쉬를 보고 대적할 자가 없을 정도로 힘이 센 무사인 것을 알고는 알파미쉬에게 형제가 되길 간청하였다. 알파미쉬와 친구가 된 카라잔은 알파미쉬를 자신의 거처에서 쉬게 하고 알파미쉬가 타고 온 말인 바이치바르를 타고 알파미쉬의 소식을 전하러 바르친에게 갔다.

바르친은 카라잔의 말을 믿을 수 없었다. 카라잔이 알파미쉬를 죽이고 바이치바르를 타고 온 것으로 생각하고 그를 시험해 보기 위해서 은근히 카라잔을 유혹하지만 카라잔은 친구이자 형제가 된 알파미쉬와의 신의를 저버리지 않는다. 모든 상황을 파악한 바르친은 몇 가지 경기를 제안한다. 활쏘기와 말달리기 등의 시합에서 승리자와 결혼하겠다는 것이다. 곧 많은 무사들이 모여 경기가 열렸고 알파미쉬가 최후의 승자가 되었다. 알파미쉬는 바르친과 결혼한 뒤 친구 카라잔과 쿤그라트인들과 함께 고향으로 갔다. 바이사르와 그의 가족들만 칼믜크 땅에 남았다. 바이사르는 형과 화해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전반부 다섯 개의 노래 끝)


알파미쉬가 떠난 뒤 타이차한은 수르하일 노파의 꾐에 넘어가 알파미쉬의 귀향길에 무사를 보내어 습격을 시도하지만 실패하게 되고 복수를 위해 바이사르의 전재산을 몰수한 뒤 그를 양치기 노예로 만들어 버린다. 이 소식이 쿤그라트에 전해지자 알파미쉬는 마흔 명의 젊은 용사들을 이끌고 다시 칼믜크 땅으로 향한다.

하지만 이번에는 교활한 수르하일이 계책을 부려 마흔 명의 미인을 준비시키고 술잔치를 벌여 용사들이 사랑과 술에 취해 잠이 들었을 때 그들을 모두 칼로 베고 불에 넣어 태운다. 용사들은 모두 죽었지만 알파미쉬는 불 속에서도 조금도 다치지 않았다. 아무리 해도 알파미쉬를 죽일 수 없게되자 그들은 땅에 진단이라 불리는 깊은 구덩이를 파고 알파미쉬를 천길 구덩이 속으로 던졌다. 알파미쉬는 진단의 바닥에서 눈물을 흘리며 자신의 운명을 한탄하게 되었다.

알파미쉬의 사망 소식이 쿤그라트에 도달했다. 바이부리에게는 크즐 지역에서 잡아온 여자 노예 사이에 태어난 울탄-타스란 아들이 있었는데 울탄은 알파미쉬가 없는 틈을 타 쿤그라트의 권력을 차지했다. 울탄은 아버지 바이부리와 알파미쉬의 어머니 그리고 자신의 아내를 노비로 삼고 칼드르가치는 스텝으로 카라잔은 알라타우산으로 내몰았다. 바르친은 알파미쉬가 떠난 후 야드가르란 이름의 아들을 낳았는데도 울탄은 전혀 개의치 않고 바르친을 자신의 아내로 취했다. 종족의 법도에 따르면 형의 미망인은 동생의 아내가 되어야 했다.

한편, 알파미쉬가 영어의 몸이 된 토굴 속으로 사냥꾼에 쫓겨 온 야생 거위가 날아들었다. 알파미쉬는 거위(혹은 백조)의 상처를 치료해 주고 거위의 날개에 자신의 피로 글을 써서 가족들에게 전해 달라고 부탁했다. 위험을 넘어 거위가 칼드르가치에게 날아가고 칼드르가치는 거위의 날개에 적힌 알파미쉬의 편지를 읽고서 카라잔에게 알파미쉬를 구해달라고 부탁한다. 길을 떠난 카라잔은 어렵게 알파미쉬를 발견하지만 마지막 순간에 알파미쉬는 친구의 도움을 거절한다. 그의 도움으로 어려움에서 벗어날 경우에는 친구에게 빚을 지게 되기 때문이었다. 다시 돌아온 카라잔은 칼드르가치에게 알파미쉬의 상황을 전하고 사람들이 알파미쉬가 죽었다고 생각하도록 내버려두라고 말한다.

우연히 알파미쉬가 빠진 진단에 칼믜크한의 공주 타브카아임을 사모하는 목동이 오게된다. 알파미쉬는 목동 카이쿠바트에게 공주를 진단으로 데려오면 공주와 결혼할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고 말한다. 카이쿠바트는 공주를 데려오고 타브카아임은 알파미쉬를 보자마자 알파미쉬를 사랑하게 된다. 타브카아임은 궁전에서 동굴까지 지하 통로를 파도록 명령하고 매일 진단에 알파미쉬를 보러 온다. 우연히 이 소식을 들은 수르하임은 타이차한에게 일러 바치고 한은 수르하일의 말을 듣고 진단을 흙으로 메우라고 명한다. 어려운 상황을 전하러온 공주에게 알파미쉬는 자신이 타고 온 말을 데려다 주도록 부탁한다. 바이치바르는 주인의 냄새를 맡고서 꼬리를 토굴로 내려놓았다. 꼬리는 계속 길어져 알파미쉬의 손에 닿았고 다시 짧아져 주인을 땅위로 들어 올렸다. 자유의 몸이 된 알파미쉬는 칼믜크 무사들을 제압하고 타이차한과 사악한 수르하임을 죽이고 목동 카이쿠바트를 왕좌에 올린다. 약속대로 카이쿠바트와 타브카아임을 결혼시킨다. 알파미쉬는 칼믜크인들이 목동 카이쿠바트를 자신들의 왕으로 받아들이도록 자신도 목동에게 복종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준다.

칠년 간의 속박에서 벗어난 알파미쉬는 알라타우산을 지나 아스카르산에 올라 고향의 스텝을 바라본다. 우연히 근처를 지나는 울탄의 상인들을 만나 그간의 일들을 알게되고 울탄이 우탄-벡이라고 자칭하며 족장 행세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분노한 알파미쉬는 울탄의 상인들을 내리치고 바이치바르는 쏜살같이 달려가며 큰 울음소리를 내었다. 바이치바르의 울음소리를 들은 유목민들은 알파미쉬가 살아있다는 것을 알고서 모두 다 기뻐한다. 알파미쉬는 스텝에서 여동생을 만나고 오늘이 바로 바르친과 울탄의 결혼식이 있는 날임을 알게된다.

알파미쉬는 변장을 하고 결혼 축하연에 들어간다. 하객들과 어울리면서 게임에도 참여하고 자신의 아들이 훌쩍 커 가는 모습도 본다. 마침내 하객들은 변장한 젊은이가 알파미쉬임을 알게된다. 쿤그라트인들은 거짓으로 알파미쉬의 죽음을 고하고 권력을 차지한 울탄과 그의 부하들을 붙잡아 가장 잔혹한 형벌을 가해 죽인다. 이 때 바이사르가 친지들을 이끌고 칼믜크 땅으로부터 돌아온다. 영웅 알파미쉬는 바르친과 재결합하게되고 알파미쉬의 지도하에 쿤그라트인들 사이에는 질서와 화합이 회복된다. 바이순 지역은 활기가 넘친다.

모티브와 테마편집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알파미쉬 서사시는 상당히 많은 부분에서 중앙아시아 튜르크인들의 구비문학과 유사한 모티프를 보여 주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알파미쉬 서사시 계열의 이야기 구조가 아닌 마나스, 이지게 등 다른 서사문학에서 발견되는 전형적인 모티프인

  1. 나이가 들도록 자식이 없음
  2. 노년에 얻는 자식
  3. 영웅 탄생
  4. 부족내의 복잡한 관계
  5. 작품 서두에 장황하게 설명되는 조상들의 이야기
  6. 인간과 대등한 대우를 받는 말

등이 파질 판본에서도 발견된다. 이는 기원 후 10세기에서 17세기에 이르기까지 중앙아시아 지역의 구비문학이 상호 밀접한 관련을 맺고 전수되어 왔음을 반증하는 요소일 것이다.

이제 파질 판본의 주요 테마를 살펴보자.

서사시에는 종족의 역사뿐만 아니라 시대적인 이상이 표출되는 것이 보통이다. 알파미쉬 서사시의 주된 스토리라인은 어려서부터 약혼한 신부를 구출하고 결혼을 하며 종족 내부의 불화를 치유하고 화합과 번영을 지향한다는 비교적 단순한 모습을 보인다. 칼믜크 등의 이민족과의 전쟁이 강조되는 것이 아니고 내부의 갈등의 해소 과정이 이야기의 주된 줄거리임을 보면 칼믜크 인으로 대변되는 외부의 적이 문제가 아니라 내부의 분열이 종족의 운명을 좌우하는 것이 분명하게 드러나며 분열된 종족을 화합시키는 것이 집단 전체의 번영을 위해 필요하다는 것이 서사시 생성 시기에 다수의 청자들에게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였을 것으로 보는 견해가 우세하다. 또한 알파미쉬와 바르친의 결합이 시사하는 일부일처제의 도입 모티프가 발견되는 것으로 보아 가부장적 부족 사회 체제가 흐트러지고 새로운 관계에 입각한 사회구조의 형성을 시사하는 모습을 찾아 볼 수 있다. 칼믜크의 무사들이 바이사르에게 바르친을 집단의 공유 부인으로 달라고 하는 형태는 일부일처를 지향하는 쿤그라트의 이상과 반대의 관계에 있는 집단의 이념적 지향점을 보인다. 칼믜크의 무사들이 집단으로 거주하며 마흔 명의 여인들을 거느린다는 이야기, 알파미쉬가 거느린 마흔 명의 용사들을 유혹하는 마흔 명의 여인들의 이야기, 집단 공유 부인의 존재 등은 칼믜크를 어둠의 세력으로 치부하게끔 하는 요소로 등장하고 칼믜크의 공주 타브카아임과 목동 카이쿠바트의 혼인, 카이잔이 알파미쉬의 친구로서의 성실성 유지 등은 어둠의 세력이 밝음의 세력으로 전이해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마침내 알파미쉬와 바르친의 재회와 종족의 번영은 일부일처제의 신사회의 구 질서에 대한 승리를 나타내는 모습을 보인다. 바르친의 구원과 결혼, 질서의 회복은 신-구사회의 대비를 보다 더 명확하게 해준다.

사실 서사시 내부에서 칼믜크인과 쿤그라트인 사이의 대규모 전쟁이나 불화는 드러나지 않는다. 다만 일부 에피소드를 중심으로 변화해 가는 칼믜크 사회의 모습을 그린다. 이는 16세기에서 거의 18세기에 걸쳐 계속되는 우즈벡과 칼믜크와의 전쟁 관계가 반영되지 않은 것으로 알파미쉬 서사시의 파질 판본의 최종적인 텍스트가 16세기 이전에 거의 현재적인 완전한 구조로 형상화되었음을 시사한다. 따라서 서사시의 테마가 집단의 이상이나 종족의 운명을 재료로 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차원의 결혼과 행복과 관련된 것으로 축소되어 나타나있다.

다수의 연구자들이 파질 텍스트에서 이슬람적인 테마에 주목하기도 하지만 서사시에서 시종 발견되는 이슬람적인 요소는 사건의 흐름과 본질적인 연관성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바이부리와 바이사르가 아이들을 삼 세에서 칠 세까지 이슬람식 학교에 보내어 글을 가르쳤다는 것과 알파미쉬에게 농업을 가르쳤다고 하는 부분들은 당시의 쿤그라트인이 대부분 여전히 유목을 그 생활근거로 하고 있었고 구체적인 교육기관이 없었던 점을 고려하면 기존에 구전되던 서사시에 15-16세기의 경작방식의 진보에 따른 농업기반 조성과 이슬람식의 교육기관의 출현 등에 영향을 받은 결과일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하고 이는 이슬람적인 영향을 표시하는 소도구들이 사건의 흐름과 본질적인 관련을 맺지 못하는 것을 보여줌과 동시에 원작 알파미쉬에 이슬람의 영향이 침투해서 개작된 것임을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서사시의 초반에 자식을 희구하며 올리는 기도에도 알라 혹은 모하메드 등의 언급이 전혀 없어 이슬람의 신에게 간구를 한 것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많다. 오히려 작품의 서두에 튜르크인들의 전통에 따라 조상의 계보를 밝히는 점과 조상의 업적을 내세우는 것들을 볼 때 종족의 조상에게 기도를 올린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더 사실에 가까울 것 같다. 또한 작품내부에 장치된 이슬람적인 요소가 일만이천행의 서사시의 내용에 비추어 볼 때 그 양이 미미해서 우즈벡의 전통을 익히 아는 쿤그라트 혹은 우즈벡 혹은 기타 튜르크인들이 서사시를 들을 때에는 얼마든지 이를 제외하고 이해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뒤에서 살펴 볼 알타이 서사시 알립 마나쉬에서 이슬람적인 요소가 전혀 발견되지 않는 점을 보면 알립-마나쉬가

  1. 알파미쉬에 선행한다는 증거
  2. 알타이인들 가운데 몽골계 보다 튜르크계가 이슬람에 더 노출되어 있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반증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알립-마나쉬의 순수 알타이적 성격과 알파미쉬의 이슬람적인 시각으로 한번 걸러낸 듯한 서술양태를 이슬람과 비이슬람적인 시각에서 비교하는 것 자체로만 상당한 분량의 분석을 요해 종교와 관련된 모티프에 대한 구체적인 접근은 별도의 연구서에서 다루도록 하자.

알파미쉬 서사시에서는 쿤그라트인의 다양한 민속과 풍습들이 해학적인 방식으로 묘사되어 있다. 또한 ‘칼믜크 한의 무사들이 혼자서 매일 아흔 마리의 양을 먹는다는 등 명백하게 거짓말인 줄 알게 하는 비유와 성격묘사는 서사시의 존립 양태인 음송자와 청자간의 교감과 극의 흥미를 더하기 위해서 적절하게 사용된 것으로 보이며 과장된 요소들은 우즈벡의 일반 문학에서도 흔히 드러나는 요소이다. 과장된 묘사와 초자연적인 비유는 알립-마나쉬를 비롯한 기타 알파미쉬 판본들에서도 공히 나타난다.